기원전 2181년부터 기원전 2055년까지는 고대 이집트의 제7왕조에서 제10왕조까지 이어진 제1중간기 시대입니다.
이 장기간의 통치는 이집트 지방의 통제력을 약화시켰고, 고왕국은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어 제7왕조가 시작되었으나 파라오 10명의 짧은 재위 기간으로 특징지어졌고, 그 후에 제8왕조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효과적인 통치를 보이지 못하였고, 케티 1세에 의한 제9왕조의 출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케티 1세는 지방 귀족들을 제압하려고 했으나, 이미 귀족들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어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강력한 고왕국은 제6왕조의 페피 2세의 무능력으로 인해 붕괴하였습니다.
결국, 제9왕조와 후계 왕조인 제10왕조는 이집트의 영향력을 제한된 지역까지만 확장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남부 상이집트 지역에서 제11왕조가 성립했습니다. 멘투호테프 2세가 제10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재통일하여 중왕국을 세우며, 제1중간기 시대는 종식되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시기에 이집트는 하이집트와 상이집트로 나뉘면서 예술과 조각상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제1중간기는 혼란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에 제7왕조, 제8왕조, 제9왕조, 제10왕조에 대한 기록과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테베를 중심으로 하는 제11왕조가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테베의 예술 풍경은 중왕국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테베와 같은 상이집트 중심 도시에서는 여성의 조각상에서 가슴이 더 크게 그려지거나 남성 조각상에서는 더 상세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등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제6왕조 시기는 무능한 페피 2세로 인해 대단히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페피 2세는 굉장히 오랜 94년 동안 왕좌에 앉아 있었으며, 이 동안 왕의 권위가 무너지고 지방 총독들이 독립적으로 행동하여 내전과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더욱이 갑작스러운 가뭄으로 나일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기근이 찾아와 민심이 악화하였으며 왕가의 영향력은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고왕국은 붕괴하고 중왕국 시대 이전에 혼란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제1중간기라고 부르며, 이기에 이집트는 대규모 내전과 혼란에 시달렸습니다. 제1중간기 시기 동안에는 70일 동안에 70명의 파라오와 146년 동안에 27명의 파라오가 군림하며, 극심한 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이집트는 북부 하이집트와 남부 상이집트로 나뉘어서 지속적인 분쟁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내전은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어 신전들이 약탈당하고 파괴되며 예술품들이 손상되고 문화가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제1중간기의 첫 왕조인 제7, 8왕조는 알려진 것도 적은 단명 왕조였다. 제8왕조의 개창자였던 멩카레는 수도를 멤피스에 두고 왕권 강화에 노력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멘카레의 뒤를 이어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네비,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켄두,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테레루, 네페르카호르, 네페르카레 페피세네브,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등의 여러 파라오들이 즉위했으나 대부분이 길어봐야 3년을 채 못 채우고 죽거나 암살당했다. 게다가 중동 지방 전역에 닥친 가뭄과 기후 변화로 인하여 이집트의 경제와 농경은 갈수록 피폐해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 와중에 제8왕조 최후의 파라오 네페리르카레는 집권 1년 반 만인 기원전 2160년에 헤라클레오폴리스를 기반으로 한 케티 1세에 의해 살해당했다. 결국 제8왕조는 기원전 2181년에 세워진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완전히 멸망했고, 제8왕조의 뒤를 이어 제9왕조가 들어섰다.
이집트 왕조들의 《연대기》를 적은 신관 마네토가 제9왕조를 ‘역대 최악의 왕조’, ‘전대 왕조들보다도 못한 악마들’이라고 혹평을 남겼을 정도로 제9왕조 시기의 이집트는 그나마 통일 왕국을 유지하고 있었던 제8왕조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 중 남아있는 것들이 워낙 없기 때문에 심지어 파라오들의 이름이나 명단, 계보마저도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제9왕조의 초대 파라오인 케티 1세는 헤라클레오폴리스를 기반으로 해서 왕좌를 찬탈했던 인물로, 고왕국 제6왕조의 후계를 주장하면서 탄압을 전제한 철권통치를 펼치려고 들었다. 당연히 왕권이 땅에 떨어진 시점이었던 이집트에서 철권통치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으니, 제9왕조의 영향력은 헤라클레오폴리스 일대와 나일강 하류에만 한정되었고 옛 수도 멤피스를 포함한 상이집트 지방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해버렸다. 이후 잠시동안 기록이 없는 시대가 나오다가 기원전 2130년에는 파라오 메리하토르가 즉위하면서 헤라클레오폴리스에 제10왕조가 들어섰다. 물론 제10왕조 역시 전대인 제9왕조와 마찬가지로 왕권은 대단히 약했으며 전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메리하토르 사후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등이 즉위했으나 이들 역시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제11왕조는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를 거치며 꾸준하게 상이집트를 통일하는 한편 북쪽으로 진군하여 아비도스 등지에서 전투를 벌이며 헤라클레오폴리스를 위협했다. 결국 인테프 3세의 아들 멘투호테프 2세가 재위 39년 만에 마침내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제10왕조를 무릎 꿇리고 상•하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130여 년에 걸친 제1중간기의 혼란도 수습되었다. 이집트를 재통일한 제11왕조가 상이집트의 테베를 중심으로 했기에 테베 왕조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이집트에는 중왕국 시대가 개막되었다.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헤라클레오폴리스 정권이 제대로 맥을 추지 못하자 나일강 상류를 포함한 남부 상이집트에서는 군벌 시대가 개막되었다. 지방의 총독들이 파라오의 허가 없이 서로 전투를 벌이거나 상대 도시를 점령해 취하는 등 사실상 파라오의 지배하에서 떨어져 나간 것인데, 그들 중 테베의 총독 인테프가 가장 힘이 강력하여 상이집트의 군벌들 대부분을 정리하고, 거의 파라오의 힘에 맞먹을 만한 세력을 키웠다. 인테프 본인과 그 후계자 멘투호테프 1세는 직접 파라오를 칭하지는 않았으나 멘투호테프 1세의 아들 인테프 1세가 전 이집트의 통치자를 선언하면서 사후 추존이 이루어져 역대 파라오들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학계에서는 테베에 기반을 둔 멘투호테프 1세 혈통의 왕조를 제11왕조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