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제3중간기 – 누비아의 통치

누비아의 통치

 

그러나 제24왕조가 발흥한 사이스로부터 먼 남쪽 누비아에는 한창 세력을 불리고 있었던 쿠시 왕국의 흑인 왕 피이(피앙키)가 있었다. 완전히 이집트화 된 누비아인 군주 피이는 막 혼란스러운 이집트를 통합시키겠다는 원대한 야심이 있었고, 결국 재위 20년 차에 군대를 몰아 제24왕조를 몰아내고 상이집트와 테베 일대를 제패했다. 학계에서는 피이의 이집트 정복 이후의 쿠시 왕국을 이집트의 제25왕조로 본다. 제25왕조는 순수혈통 누비아인들이 세운 왕조라 에티오피아 왕조 혹은 흑인 왕조라고도 불린다. 이집트인들에 비해서도 피부색이 짙었던 누비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이집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파라오가 등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이는 제22왕조의 오소르콘 4세를 꺾고 하이집트 일대까지 정복했다. 그러나 피이는 더이상 북진하여 고향 누비아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 때문에 도망친 제24왕조의 테프나크트를 잡아 죽이지 않았다. 피이가 하이집트 정복 이후 누비아로 돌아가자 테프나크트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세할 수 있었고, 이 상황은 피이의 후계자 셰비쿠가 테프나크트의 후임 바켄레네프를 죽이고 제24왕조를 끝장내면서 종결된다.

셰비쿠는 그 아버지와 같이 아문 신앙을 받아들이며 본격적인 이집트화가 이루어졌던 인물이었다. 기원전 714년 피이가 죽자 셰비쿠가 제25왕조의 제2대 파라오로 즉위했다. 셰비쿠는 제24왕조를 멸망시키고 분열되어 있던 이집트를 통합했다. 또한 신왕국 시절 개건한 카르나크 신전을 방문하여 신관들의 예우를 받으면서 지역 민심을 안정시켰고, 덕분에 제25왕조는 예상외로 별 탈 없이 이집트를 흡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하가 광대한 이집트를 한꺼번에 다스릴 수 없으니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나누어 따로 통치하는 것이 어떠냐고 간언하자 이제까지의 개판을 통합했던 셰비쿠는 분할통치는 오직 전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하며 단호히 거부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선견이 있는 군주이기도 했다. 셰비쿠의 뒤를 이은 제3대 파라오 샤바카 역시 전임자와 비슷한 정책을 펼쳤다. 제25왕조는 샤바카의 재위 기간 동안 이집트 전체를 확실하게 장악했으며, 그는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를 명령하거나 신전을 개축하는 등 여러 복구 작업을 펼치며 이전의 혼란 때문에 입은 피해를 복구했다. 제25왕조는 샤바카의 재위 기간 동안 상당히 평화로운 시대를 누렸고, 남방 야만족이었던 누비아인들의 지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서방의 야만인인 리비아인들의 지배와 분열, 내전에 지쳐있었던 이집트인들은 누비아의 지배를 거부하지 않았다. 신아시리아 제국의 끊임없는 위협으로부터 이집트를 방어하며 이집트의 독립성을 지켜내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명군이었다.

타하르카의 재위 동안 나일강이 범람하여 풍작량이 풍부해지면서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제25왕조는 타하르카 파라오 이후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타하르카는 완전히 이집트 문화에 녹아들어 아문의 대신전에 큰 양의 황금을 기부하여 신관 계급들의 호의를 얻었고, 그 결과로 제25왕조는 이집트의 옛 신왕국의 번영을 상회하는 강력한 국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시대에는 지금까지도 이집트의 주요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는 누비아와 이집트의 건축 양식을 혼합한 피라미드가 건축되었습니다.

아시리아가 비옥한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며 이집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에 따라 아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 대규모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타하르카를 이끈 제25왕조는 아시리아 제국 때문에 결국 패망하게 되었습니다.  타하르카는 아시리아의 산헤립 왕을 억제하기 위해 유다 왕국의 히즈키야를 지원하려 했지만, 유다 왕국은 아시리아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시리아의 에사르하돈 왕은 이집트로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타하르카는 에사르하돈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며 아시리아는 하이집트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타하르카는 남쪽 테베로 피난을 가다가 쿠시 지역에서 증원군을 모아 다시 아시리아 군대를 밀쳤지만, 에사르하돈이 군대를 복구하고 대규모 침공을 시작하여 다시 패배하고 남쪽으로 밀려났습니다. 에사르하돈은 멤피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하고 타하르카의 가족과 궁정 신하들을 포로로 잡아가며 이집트를 압도했습니다. 에사르하돈은 이집트의 도시들에 조공을 강요하고, 이집트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하르카는 이를 눈치채고 기원전 669년에 멤피스를 다시 탈환했지만, 에사르하돈이 군대를 다시 편성하고 대규모로 침공하여 다시 밀려났습니다.

에사르하돈은 아시리아 제국을 대표하여 상이집트 지역을 약탈했습니다. 이에 따라 상이집트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신전들은 파괴되고 왕궁은 붕괴했습니다. 결국 쿠시 왕국은 이집트에서 퇴각하면서 제25왕조의 시대가 마무리되었고, 아시리아의 지배 아래에서 이집트 말기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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