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말기 왕조 – 아케메네스 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아흐모세 2세가 사망한 후 프삼티크 3세가 왕위에 오르지만, 그의 재위는 겨우 6개월밖에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프삼티크 3세가 파라오가 되자마자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침공했습니다. 프삼티크 3세가 즉위 직후, 남부 테베 지방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이는 흔치 않은 현상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겼으며, 그 예언이 현실로 이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 군은 기원전 525년, 아랍 도움을 받아 사막을 건너 이집트를 침공했습니다. 전투 중에 신하의 배반으로 인해 프삼티크 3세는 패배하고 멤피스로 도망쳤으나, 장기적인 공성 끝에 멤피스가 함락되어 프삼티크 3세는 포로가 되었습니다. 멤피스를 정복한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 귀족 2,000여 명을 처형하고 왕족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프삼티크 3세는 목숨을 건진 뒤 은밀히 반란을 계획하여 캄비세스 2세를 암살하려고 시도했으나 이 음모는 빨리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프삼티크 3세는 사슬에 묶여 수사로 끌려가고, 결국 자살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26왕조는 비참하게 종료되었고, 그 후 이집트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프삼티크 3세 이후 페르시아의 샤한샤(황제)들이 스스로를 파라오로 여겼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통치 시기를 제27왕조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525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페르시아의 통치기인 제27왕조는 120여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파라오들은 곧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황제들과 동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원전 525년 여름, 프삼티크 3세를 꺾고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며 파라오로 즉위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집트는 페르시아 제국의 한 부분이 되었고, 아리얀데스가 제1대 사트라프(지방 총독)가 되었습니다. 캄비세스 2세의 통치 동안 이집트에서는 옛 종교가 탄압당했으며, 멤피스, 테베, 헬리오폴리스 등의 대신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옛 신들에 대한 숭배는 중단되었고, 예년에 열리던 축제도 중단되었습니다.

기원전 522년,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떠나 페르시아로 귀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형제인 바르디야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자, 다리우스 1세가 바르디야를 쫓아내고 황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 황제와 동시에 이집트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522년 후반, 왕족 출신의 한 남자가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를 페디바스테트 3세로 선언하여 파라오로 자칭했습니다. 이 반란은 이집트인들의 페르시아 세금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시작되었으며, 지역 총독의 노력으로는 진압하기 어려운 규모로 확대되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세율을 낮추고, 이집트의 옛 종교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통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집트인들이 순응하면서 반란은 자연스럽게 종식되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제2세 캄비세스보다 훨씬 더 이집트의 내정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법전을 제정하고, 홍해와 내륙 호수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여 무역을 촉진했습니다. 또한, 페르시아의 왕궁 건축을 위해 이집트의 기술자들을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통치 동안에는 이집트 총독인 아리얀데스를 부패 혐의로 처형함으로써 정치적인 기강을 회복하고 이집트인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또한,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 종교를 탄압했던 것과 달리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 종교에 대한 탄압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통치했습니다. 그는 약 36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으며, 그의 사후인 기원전 486년에 사망하자 크세르크세스 1세가 새로운 이집트의 파라오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샤한샤 교체기에 이집트에서 반란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페르시아와 이집트의 문화는 상당히 다른데, 페르시아가 완전히 이집트를 흡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반란군들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가 전쟁을 위해 막대한 군비가 있어야 하자, 크세르크세스 1세는 이집트의 보물을 동원하여 엄청난 양의 황금을 사용했습니다. 세율은 상당히 높아졌고, 페르시아로 운반되는 금의 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증가했습니다. 또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이집트의 전통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신전 건축을 지원하지 않았으며, 조로아스터교를 종교로 받아들여 이집트의 종교를 탄압했습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결국 아르타바누스에게 암살당하여 크세르크세스 1세의 이집트 통치 역시 종료되었습니다. 이후 페르시아가 혼란에 휩싸이자 이집트에서도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나로스 2세는 리비아 출신으로, 이집트의 멤피스를 점령하고 페르시아 총독을 처치하며 이집트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였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지원을 받으며 페르시아와 싸웠으며 상황은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메가비주스 장군을 이집트로 파견하여 이나로스 2세를 굴복시키고, 이나로스 2세는 항복하면 살아남을 것을 약속하자 현실적으로 페르시아에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나로스 2세가 후환을 남겨두지 않고 처형되었습니다.

기원전 424년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사망한 후, 크세르크세스 2세가 즉위했지만, 단 무려 45일만 재위하였습니다. 크세르크세스 2세를 암살한 소그디아누스도 그의 형제인 오쿠스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다리우스 2세가 이집트를 통치하였지만, 황족 간의 분쟁과 내분 때문에 페르시아의 이집트 장악력은 감소하였고, 기원전 405년경에 크레타에서 온 아미르타이우스가 반란을 일으켜 제28왕조를 선포하며 제27왕조는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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