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제30왕조의 파라오인 넥타네보 2세를 패배시켜, 이집트의 독립적인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다시 이집트를 지배하며 제31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곧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가 파라오로 즉위한 시기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제27왕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기원전 343년부터 기원전 332년까지 이어진 제31왕조는 단 몇 년간의 지배였습니다.
기원전 343년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는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를 침공했습니다. 그 군대에는 330,000명의 페르시아 병사, 14,000여 명의 그리스 파견군, 로도스에서 온 4,000명의 병사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넥타네보 2세는 이 페르시아의 침공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대비하고 있었지만, 페르시아의 엄청난 군사력과 강력한 공세에는 대항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유능한 장군들이 많았던 페르시아 군대와는 달리 이집트는 숙련된 지휘자가 부족했습니다.
결국 넥타네보 2세는 페르시아 군대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멤피스로 철수했습니다. 당시 이집트의 도시와 성은 그리스와 이집트 병사들이 혼합되어 방어하고 있었는데, 다른 민족들 간의 갈등이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이 갈등을 파악한 페르시아군 장교들은 불화를 부추겨 이집트의 요새와 도시들이 빠르게 페르시아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각 도시를 장악하고 멤피스로 진격하여 이집트를 정복했습니다. 넥타네보 2세는 패배를 인정하고 이집트를 떠나 에티오피아 지방으로 도망쳤습니다. 페르시아 군은 이집트를 황폐화하며, 수많은 사람을 노예로 끌고 갔고, 신전과 왕궁을 약탈하여 거대한 부를 얻었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는 이집트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고, 경전과 왕릉을 파괴하여 이집트가 재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페렌다레스를 이집트의 총독으로 지정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금으로 용병들을 뇌물로 유인한 후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는 이집트를 정복한 후 엄청난 보복을 가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성벽을 철거하고, 대규모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페르시아로 끌고 갔으며, 신전이나 왕궁 등을 약탈하여 상당한 재화를 착취했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는 이집트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짓밟아주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초고세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신성한 경전이나 옛 왕릉들을 파괴하고 뒤적였습니다. 이후 그는 페렌다레스를 이집트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약탈한 금으로 용병들에게 봉급을 주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페렌다레스를 비롯한 이집트 총독들의 통치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기원전 338년에 사망한 이후 페르시아는 다시 내분과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 후 잠시 다리우스 4세가 샤한샤로 즉위하였지만, 그의 통치는 짧았고, 다리우스 3세가 새로운 샤한샤가 되었습니다. 다리우스 3세는 사바체스 총독을 임명하였지만, 이수스 지방에서의 반란 때문에 마자체스가 그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 3세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으며, 이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이집트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31왕조는 11년 동안의 통치 끝에 막을 내리고, 그리스에서 비롯된 헬레니즘 제국이 이집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바빌론에서 별세하며, 그의 장군 중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를 차지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우면서 이집트 말기 왕조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